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평창읍에 말 걸기

낯선 여행자의 시선으로 평창읍에 말 걸기

“높은 산이 이렇게 많은 고장인데 평평할 평(平), 평창이라 부르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

평창터미널 앞 둔치에 주차를 하는데 동행한 P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고구려 땅일 땐 우오(于烏)현이라 불렀다는데, 그 이름이 ‘까마귀’와 연관이 있는지, 감탄사의 음차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통일신라에 이르러 고개, 산봉우리, 산맥을 뜻하는 영(嶺)현이라 부른 건 그럴 듯했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건 왕건이 고려를 개국한지 23년째 되던 해(940년), 평창은 천 년의 세월을 이어온 이름이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이 남산의 옆구리를 툭 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종부교 건너 ‘남산둘레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종부교에서 남산데크를 지나 평창고수부지로 돌아오는 코스는 7킬로미터, 2시간이 소요되는 도보길이다. 남산둘레길의 일부인 ‘남산데크’는 장돌뱅이 루트와도 겹친다. 종부교로 올라섰다. 옛 다리를 리모델링한 인도교인데 바닥의 꽃그림과 커다한 글씨가 여행자를 반겼다.

‘꽃 나빌레라’

강 건너에선 두 갈래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솔향기고운숲길’이란 별칭이 있는 남산데크, 다른 하나는 ‘송학루’와 ‘남산산림욕장’으로 이어지는 계단.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는 여행자의 심정을 노래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The Road Not Taken>이 떠올랐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한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 시인은 말했다. 먼 훗날 어디에선가 한 숨 지으며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리라고…

“숲속 두 갈래 길에서 나는 사람이 덜 가는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솔향기고운숲길’로 들어섰다. 강을 내려다보며 걷는 수변데크, 구부러진 나뭇가지와 옹이가 예사롭지 않은 소나무를 만났다. 나무 아래 시가 새겨져 있었지만 흘깃,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제목이 시선을 묶고 말았다. <나무도 열반에 들면 사리를 품는다> 절묘한 배치에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무도 열반에 들면 사리를 품는다 / 나무들이 수행정진 중인지 / 울퉁불퉁 오래된 나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 눈물 나게 향기로운 사리 한 덩이…(중략)

열반에 든 나무 사이를 걷는 길은 아름답고, 강물 흐르는 소리 청량했다. 데크 따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여러 편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눈에 띄는 시를 또 한 편 발견했다. <나무가 나무에게 건너갈 때>

나무도 작은 벌레에게 우주와 같으리라 / 나무 안에서 / 먹고, 떠들고, 집 짓고, 알 낳고, 새끼도 기르며 /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미시와 거시 세계를 넘나드는 작품에 감탄하며 글쓴이를 확인하니 <나무도 열반에 들면….>과 같았다. 조영웅. 궁금증이 일어 즉각 검색을 했다. 1990년대 초 등단, 15권의 시집을 낸 평창 출신의 시인. 뜻밖의 발견에 기뻤다, 집으로 돌아가면 찾아 읽어볼 시집들이 생겼으니까!

남산데크가 끝나는 곳엔 평창올림픽 기념 조형물이 있었고, 길은 다시 두 갈래로 갈라졌다. 오른쪽은 ‘남산둘레길’, 왼쪽은 ‘장돌뱅이길’. 여름 햇살 아래서 걷기엔 무더울 듯 했다. 우린 되돌아가기로 했다. 반복해서 보아도 재미난 영화처럼 다시 걸어도 좋을 강변길이고, 산중턱으로 난 샛길로 빠지면 ‘남산산림욕장’과 ‘송학루’로 이어질 테니까.

남산산림욕장으로 올라가 쉼터의 흔들의자에 누웠다. 앞으론 강이 흐르고,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반짝이며 내려앉는 햇살.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Kings of Convenience’의 노래를 들으면 딱 좋을 자리였다. <케이맨 아일랜드 Cayman Island>. 국내에선 ‘편의왕’이란 별명이 붙은 노르웨이 듀오의 음악을 듣다가 문득 평창의 평이 ‘평평하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편안, 무사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리란, 생각에 이르렀다.

평창(平昌), 아무 일 없이 편안하게 번성하는 마을.

송학루는 마을이 다 내려다뵈는 강변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일찍이 평창관아의 문루였는데 1928년 헐릴 상황에 처하자 지방 유생들이 뜻을 모아 현재 자리로 옮겼고, 1999년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생들은 다른 건 몰라도 누각 터를 보는 덴 탁월한 안목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누각이란 본래 ‘정신수양’과 ‘풍류’를 위한 건축물이 아니던가? 이름대로라면 학들까지 날아들었을 터! 나의 상상은 ‘풍류’로 자꾸만 흐르고 결국 술과 음식으로 이어져 허기가 졌다.

오일장을 맞은 식당으로 달려가 메밀묵밥과 올챙이국수를 주문했다. 메밀은 원산지가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로 일손이 거의 필요하지 않는 작물이다. 가뭄에 강하고 비옥하지 않은 밭에서도 잘 자라기에 일찍이 강원도 산간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P가 메밀묵밥을 퍼먹는 동안 나는 올챙이국수를 잘게 끊었다. 옥수수 앙금으로 만든 죽을 구멍 뚫린 바가지로 내리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양이 올챙이 같아서 붙은 이름인데, 최근엔 국수틀로 내리다 보니 올챙이(?)가 길어졌다. 그렇다고 젓가락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니 숟가락으로 툭툭 끊어 퍼먹는 게 간편하다. 강원도 대표 여름별미!

한양, 경주, 공주처럼 옛 왕국의 수도를 파면 유물이 나온다. 돌다리든, 주춧돌이든, 망부석이든. 평창에서도 지역개발을 위해 땅을 팠다. 출토된 게 있는데 인간이 만든 게 아니었다. 수억 수천 만 년 자연이 만든 뒤 품고 있던 기암괴석들. 평창군은 노람뜰에 바위를 옮겨놓고 공원을 개장했다. 형상 따라 거북바위, 두꺼비바위, 돌고래바위, 황소바위, 해마바위 등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 없는 바위가 더 많다고 하니, 나도 이름을 한번 붙여볼까?

바위공원엔 ‘돌문화체험관’이란 전국최대수석전시관도 들어와 있는데, 2019년은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래 ‘수석’이란 단어가 가장 빈번하게 검색된 해였을 것이다.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 때문에. “야, 이거 진짜 상징적인 거네!” 친구에게서 수석을 건네받은 기우의 대사다. 봉준호 감독이 ‘수석’을 통해 전달하려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수석’이 기택네 집으로 들어오면서 무계획적 삶을 살던 가족이 인생을 계획하기 시작하고, 기우는 수해를 입고 대피소에서 잘 때도 수석을 품에 안는다. “얘가 자꾸 나한테 달라붙는 거예요.” 계획이 파탄난 후에야 기우는 수석을 원래 자리(자연)로 돌려놓는다.

<기생충>이 던진 ‘수석’의 의미를 곱씹으며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바위공원이 마음에 들었다. ‘골뱅이의 꿈’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노랑 코스모스 핀 들판, 키 큰 미루나무가 있는 풍경, 무료캠핑장 데크 앞에 서 있는 기암들, 우거진 숲 사이 오솔길… 패러글라이더들이 창공을 한바탕 휘젓고 강변에 내려앉았다.

장암산 활공장을 차량으로 오가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대부분의 활공장 가는 길이 그렇듯 좁고 가파른 임도를 지나기 때문에 맞은편에서 차량이 나타나면 어찌할 바 모를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오토바이라면 사정이 좀 다르겠지만. 마침 차량이 없었던 덕분에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포장도로지만 마지막 200미터를 남겨두곤 자갈이 깔린 비포장이다. (평창 패러글라이딩 체험학교의 운영시간은 오전9시부터 오후6시로 보통 트럭이 오간다)

산과 산이 겹치며 큰 파도처럼 물결치는 풍경 아래로 구불구불 강이 평창읍을 휘감아 도는 모습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평창강이 카르스트 지형을 감입곡류하면서 평창버스터미널, 군청, 바위공원, 노성산이 들어앉을 터를 만들었구나! 아래선 미처 보지 못했던 한 세계가 자신을 드러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에 취해 있는데 오늘의 마지막 패러글라이딩 체험자들을 태운 트럭이 나타났다. 패러글라이더를 펼치고, 바람방향을 가늠하더니 활공장을 내달렸고,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P가 “오늘 같은 날, 평창에 오길 정말 잘 했지?”하고 물었다. 나는 응답했고, 이어 그 문장을 미처 정하지 못한 ‘연재코너 제목’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안 왔으면 어쩔 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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