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는 봉평 꽃 문학기행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찾아 떠나는 봉평 꽃 문학기행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흐드러진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니 활자로 보았던 소설의 감흥이 보름달만큼이나 커졌다.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이 기막힌 표현을 쓰지 못해도 이 풍경을 접한다면 누구나 흠뻑 취할 오감은 열리게 된다. 허생원과 성씨 처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장돌뱅이의 현장인 봉평 장터도 북적거리니 마치 내가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따라서 걷는 봉평

봉평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 무대로 봉평장을 떠나 밤새 메밀꽃밭을 지나 70리 대화장으로 가는 로드 스토리다. 허생원이 메밀꽃밭을 지나며 첫사랑의 추억을 곱씹게 되는데 그 영화 같은 장면을 만나고 싶다면 9월에 봉평을 찾는 것이 제일 좋다. 단 한 번의 사랑으로 봉평장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허생원의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메밀꽃으로 활짝 피어났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공간을 자랑하는 봉평장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걷는 것을 추천한다. 건물 한 동 전체에 메밀꽃을 묘사한 글귀가 원고지 칸에 박혀 있고 앙증맞은 당나귀가 서 있는 계단 따라 올라가면 봉평장까지 벽화골목이 이어진다. 담벼락에는 책을 읽지 않아도 소설의 주요 장면이 그려져 있어 이해하기 쉽다. 주소를 보니 길 이름이 ‘허생원 장터길’이다. 허생원과 동이가 되어 골목을 기웃거려도 좋고 시장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막국수 한 그릇과 감자전에 작은 행복을 즐겨도 좋다. 메밀꽃술까지 한 잔 걸치면 절로 흥이 돋는다. 충주집터는 허생원과 장돌뱅이들이 드나들던 술집으로 소설은 싱숭생숭했던 첫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충주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초가는 관광안내소를 겸해 가볼만한 곳을 추천받아도 좋고 봉평 읍내 지도 한 장 얻고 코스를 짜면 알찬 여행이 되겠다. 남촌막국수 집 앞에는 나귀에 포목을 잔뜩 실은 허생원과 동이의 조형물이 서 있다. 부푼 희망을 안고 장터를 향하는 모습을 담았다. 봉평장 주차장 앞은 가산공원으로 효석의 흉상을 만날 수 있으며 메밀꽃 작은 책방에 들어가면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은 물론 이효석 전집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현지에서 먹는 음식이 맛나듯 책도 고향에서 읽어야 감동이 커지나 보다.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언덕

메밀꽃밭 속내로 들어가려면 흥정천을 건너야 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본 개울과 저 멀리 아른거리는 산줄기가 볼만하다. 섶다리까지 놓여 있어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가는 동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섶다리를 건너면 ‘메밀꽃 필 무렵‘ 문학비가 손짓한다. 허생원과 성씨 처녀가 정을 나누었던 물레방아가 ‘삐거덕’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 뒤쪽 계단을 따라 오르면 언덕 위에 이효석 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효석의 생애와 작품세계, 유품을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문학관에서 내려오면 효석달빛언덕이다. 효석은 봉평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평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생가를 떠나 하숙 생활을 하였는데 100리 길을 걸어 고향집을 오가곤 했다. 길 위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이 <메밀꽃 필 무렵>이다.
효석은 주옥같은 문체로 강원도의 토속적 자연을 멋지게 그려냈지만 부인과 자식을 잃은 후 만주를 유랑했고 이른 나이에 결핵으로 죽고 만다. 이효석 생가 마루에 걸터앉아 고단한 삶을 살았던 효석을 위로해본다.

보름달을 멋지게 표현한 이호형 작가의 오래된 정원도 볼 수 있다. 짧지만 긴 여운, 아름다운 사랑과 기다림을 작가는 빈 의자와 둥근달로 표현하고 있다. 평양에 살았던 푸른집은 담쟁이덩굴이 볼만한데 바로 이 집에서 <메밀꽃 필 무렵>을 집필했다. 이효석의 삶 중에서 가장 단란하고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하는데 그 집필실과 침실 등을 볼 수 있다.
근대문학체험관은 IT기술과 접목해 문인들의 삶을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나귀광장, 집채만 한 당나귀 뱃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부에 포토존과 작은 도서관이 있어 아이들이 즐거워한다. 그 앞에 효석을 상징하는 둥근 안경과 만년필이 전시되어 있다.

육지 속 소금바다, 메밀꽃밭

물레방아 앞쪽과 흥정천 서쪽으로는 눈부신 메밀꽃밭이 자리하고 있다. 콩알만 한 작은 꽃이 집단을 이뤄 거대한 팝콘 바다를 일궈내고, 육지 속 소금 바다를 거니는 맛 때문에 사람들은 마음속의 고향 찾아가듯 봉평을 찾는 모양이다. 가을 하늘과 하얀 메밀밭. 발정 난 당나귀는 어디에 묶어 두고 눈부신 꽃밭을 감상했을까?

꽃밭을 한적하게 거닐고 싶다면 오전 10시 전에 찾거나, 소설에서 묘사한 것처럼 한밤중 달빛에 물든 메밀밭을 만난다면 색다른 느낌이겠다. 운 좋으면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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