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강 물돌이 `매화마을 녹색길`

평창강 물돌이 `매화마을 녹색길`

코비드 19로 인한 시절의 답답증으로 콧바람을 넣고 싶었다. 사람들을 대면하지 않는 곳을 찾아 떠나는 길. 언젠가 걷기 트레일에 점찍어 놓았던 평창군 매화마을로 목적지를 삼았다.
길에 대한 정보가 확실치는 않았지만 그럼 어떤가. 일단 집밖을 나가는 게 중요한 것을.

평창군 응암리 매화마을은 영월에 가까운 위치라 원주와 영월 주천을 거쳐 평창강을 거슬러 오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녹색길 안내판이 보인다. 잘 찾아 왔나 보다. 마을 입구 주차장에 설치된 안내판의 사진은 알아볼 수 없게 낡았지만 이정표가 제법 잘 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매화마을 녹색길은 4.1km의 원점 회귀형 걷기 트레일이다. 평창강을 끼고 있는 마을을 한 바퀴 걷는 단순한 길이지만 사연만큼은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찾는 이들도 거의 없으니 언택트 여행지로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길의 시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소나무 길로 아양정(娥洋亭) 입구까지는 아스팔트 포장길이다. 흙길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마을 사람들의 편리를 생각하면 당연한 것을. 아양정(娥洋亭)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보이면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촘촘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며칠 전 내린 눈과 맞닿아 눈이 부시다. 평창강에서 30m 정도 솟아오른 평창강의 적벽 위 아양정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그 자리와 딱 알맞은 크기다. 1580년에 세워져 양반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이었지만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모집하는 양반들의 연락처이기도 했다. 지금의 정자는 한국전쟁 때 소실 된 후 다시 원형에 가깝게 복원, 보수를 했다. 전망대에서 평창강을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까마득하다.

정자를 지나며 마을까지 가는 숲길은 줄곧 눈길이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과 함께 신발 밑에서 뽀드득거리는 눈 밟는 소리가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심적 찌뿌둥함을 털어버렸다. 강변길 이정표를 따라 숲을 빠져나오니 매화마을이다. 길섶에 가로수처럼 자란 벚나무들을 보니 봄이면 강물에 날릴 꽃잎이 참말로 예쁘겠다. 길이 놓인 그 끝은 절개산이 우뚝 솟아있다. 강물을 따라 시선을 쫓아가니 평창강을 가로질러 놓인 31번 지방 도로가 풍경을 단절시켜 아쉬움을 준다. 그 옛날 선비들이 풍경 속에서 노래하던 풍류는 흘러버린 강물처럼 온데간데없다.

강변길을 따라 걷다가 김삿갓 시비를 만났다. 그가 고향인 영월 하동으로 가다가 이곳 평창강의 경치에 발목이 잡혀 하룻밤을 자고 떠났다고 할 정도로 이곳의 풍경은 깊고 광대하다. 한길 낭떠러지 뼝대 절벽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갈색으로 변한 모습은 누군가 일부러 붓으로 점을 찍어 놓은 듯 그윽하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기어이 강물 위에 올라섰다. 얼어버린 평창강 위로 하얗게 쌓인 눈 위는 짐승의 발자국만 어지럽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은 은근 심장이 쫄리는 긴장감으로 걸음 폭이 자유롭지 못하다. 혹여 얼음이 깨져 강물에 빠질까 싶은 두려움이지만 눈앞 풍경은 그런 걱정을 잠시 잊게 할 만큼 절경이다.

절벽 아래 뻥 뚫린 굴이 두어 개 보인다. 저곳이 그 사연 많은 굴인 걸까 어림짐작을 해보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설명을 해놓은 것이 없다. 임진왜란 때 평창의 노성산성이 함락되기 직전, 군수였던 권두문은 남은 병력과 군민들을 이끌고 평창강 절벽 위 천연 굴로 피신했다. 한 개의 굴에는 군수 일행이 피신해 관굴이라 불렀고, 다른 한 개의 굴에는 군민들이 피신해 민굴이라 불렀다. 절벽 중간 은밀한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으니 왜군이 아무리 찾아도 찾지를 못했다. 두 굴 사이의 통신 수단으로 매를 오가게 했는데 다리에 매달린 방울 소리에 굴이 발각되면서 왜군에 의해 동굴이 함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가 됐다. 당시 군수의 첩이었던 강소사가 왜군에게 잡혀 몸을 더럽힐 수 없다며 절벽 위에서 떨어지며 산 이름이 절개산으로 바뀌게 됐다고 한다.

매화 마을에는 매화가 없다. 절벽과 강이 있는 곳에는 꼭 있을법한 절개의 사연이지만 매로 인해 화를 입었다는 마을 이름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강변 옆 풍경 좋은 마을로 자리 잡았다. 쉼터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이 지나가신다. 넉살 좋은 길동무가 마을에 대해 잠시 여쭈니 노인께서는 기다리셨다는 듯 마을에 관해 알려 주셨다. 마을이 육지 속 섬마을 형세라 사람은 산길로 걸어 다녔고, 물자는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 오갔다는 얘기다. 우리가 감탄했던 뼝대 위 전망대에서 보면 마을이 한 눈에 보인다며 마을 자랑을 하신다.

강둑길 끝은 정수장이다. 이정표가 뚝 끊겨 되돌아가야 되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기울어 버린 탓이다. 길을 따라 오르니 꽤 넓은 산골의 귀한 논을 만난다. 방금 보았던 정수장의 물은 농사를 짓기 위해 평창강 물을 끌어 올리는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새 아양정 입구로 다시 왔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마을 입구 주차장으로 가도 되지만 발걸음은 언덕 너머 성 필립보 생태마을로 향했다.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영적 휴식의 장소로 알려진 곳이지만 코비드 19로 인해 당분간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됐다. 도로가로 나오니 길 시작 전 보았던 매화마을 입구, 생태탐방로 안내판이 바로 보인다.

차를 타고 31번 국도의 터널을 지나 천동리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서 황종사와 절개산이라는 이정표를 보고는 들어가는데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참을 들어가서야 주차장에 닿았다. 등산로 입구에서 20여분쯤, 이정표를 따라 뼝대 전망대 위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보는 매화마을은 물돌이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물돌이 마을은 낙동강과 금강이 만들어낸 곳들인데 이제부터는 평창강도 한 곳 추가다. 게다가 조금 찌그러진 형태를 하고 있지만 한반도의 형상까지 하고 있다. 눈이 하얗게 덮인 마을은 고요한 그림을 보는 듯 잔잔했다. 누군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마을 이야기 등 길은 무언의 가르침과 절경을 보여주니 걷는 즐거움은 이어진다.

📢 여행 Tip
매화마을 녹색길
– 찾아가는 길 :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도돈리 29-31
– 마을 입구 주차장 있음, 녹색길 안내 표지판 있음
– 식당, 화장실 등 편의시설 없음
– 전체 4.1km 순환형 트레일, 2시간~3시간정도 소요

 

절개산 전망대

– 찾아가는 길 :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천동1길 150을 검색 후 목적지에서 30여m 지나면 오른쪽으로 주차장 있음
– 식당, 화장실 등 편의시설 없음
– 등산로 입구에서 절개산 전망대까지 왕복 1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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